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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어느 하루, 모두의 일상중 어느 하나..... 2026년 5월 2일

by ssamji0304 2026. 5. 2.

초록의 질주와 라면의 결단 : 어느 토요일의 소소한 승전보!                                  

어제였던 근로자의 날부터 이어진 황금연휴 덕분인지, 평소에는 주말 여행을 준비하는 가족들로 북적여야 할 토요일

아침은 뜻밖에 고요한 평화를 머금고 있었다.

아파트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길가에 이름 모를 풀들과 가호수들이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다. 연한 빛깔을 털어내고

지친 듯 하면서도 강렬한, 그야말로 미친 듯한 초록을 향해 질주하는 생명력의 향연 이었다.

오전 내내 앞으로의 일상을 위한 나른 거창한 계획들을 세워보았다.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지는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나의 아내는 10여년 전부터 구청에서 운영하는 클래식 기타 강의에 열심이다. 화요일과, 토요일 일주일에 두번 기타 줄을 튕기는 그녀를 보는 것은 나에게도 일상의 즐거움이다. 보통 토요일 수업은 오후 4시에 시작 되지만

오늘은 연주 평가회가 있는 날이라 일정이 오전으로 당겨졌다. 그녀의 열정을 응원하며 기꺼이 운전대를 잡았다.

구청까지 아내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작은 사건 하나를 만났다.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였다. 70미터쯤 앞 사거리 신호에서 검은색SUV 차량 한대가 우회전을 하려다 나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좁은 길에서 서로 눈치 싸움을 할 법한 상황 이었다. 나는 일생의 한번쯤이었을 여유로움으로 먼저 가라고 손짓을 건넸다. 그러자 상대편 운전자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찰나의 순간, 그짧은 교감이 희뿌연 하늘 아래 가라앉아 있던 세상을 아름답게 채색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미덕이 가져다준 온기, 그것은 오늘 아침 거창하게 세운 나의 계획들보다 더 실질적인 행복의 증거였다.

집으로 돌아오니 나른한 오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엇다. 이제 문제는 '점심' 이었다. 아내는 나를위해 미리 식사를 준비해두고 나갔지만, 내시선은 주방 서랍 깊숙히 숨겨진 진라면 매운맛으로 향했다.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평소 좋지못한 나의 식습관에 라면에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아내의 잔소리가  나의 귓전을 때렸다. 나의 소심한 자존심은 "그래도 준비해준 밥을 먹어야지" 라는 도덕적 의무감과 "오늘 같은 날은 내 마음대로 하겠다" 라는 독립 선언 사이에서 나름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결국 승리한것은 나의 결연한 의지 였다. 비장한 마음으로 냄비에 물을 올려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국물과 매콤한 라면스프의 향기는 아내의 꾸지람을 멀리 날리고 오후의 행복을 안겨 주었다. 아내 몰래 쟁취한 그 점심은 단순한 한그릇의 라면이 아니라, 금지된 영역을 침범한 모험가의 전리품과도 같았다. 그러나 평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설겆이도 완벽히 마치고 나름 증거 인멸을 하였지만,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의 눈길은 흔적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예상대로 일장연설의 꾸지람이 차질없이 진행 되었다. 그러나사건은 이미 종결된 후였다. 종종 나를 철부지 아들처럼 대하는 아내에게 두살 연장자로서의 위엄과 주권, 그리고 취향의 자유를 주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에는 심증만 있을뿐, 물증이 없다. 나는 전술적 후퇴를 결정했다. 논리적 반박보다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다음의 기회를 노리는 '보류' 의 전략을 택했다.

비록 아내에게 혼은 났을지언정, 오늘 하루는 꽤나 만족스러운 기록을 남긴것 같다.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미래를 설계한 오전의 기특함, 길위에서 만난 낯선 이와의 다정한 인사, 그리고 아내의 철통 보안을 뚫고 쟁취한 라면의 맛까지. 

희뿌연 하늘이 세상을 감싼 나른한 토요일, 나만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때로는 거창한 목표보다 좁은길에서의 양보 한번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몰래 먹은 라면 한그릇이 일상을 행복하게 만든다. 아내의 잔소리 역시 사랑이기에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소소한 반항을 꿈꾼다.

짙은 초록을 향해 달려가는 가로수들처럼, 우리의 일상도 뜨겁고 치열하게, 그러나 가끔 싱겁게 흘러가고 있다.

 

 

2026년 5월, 어느 하루를 보내며....

노트와나뭇잎 : 소소한 일상에대한 이미지